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네.
오랜 시간 준비한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기뻐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순간을 상상해왔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결과를 확인했을 때, 제가 기대하던 감정은 오지 않았습니다. 충족감도, 해방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조용함은 공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왜 저는 그때 기쁘지 않았을까.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꿈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는 일이 그냥 좋았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풀고, 이해되지 않던 개념이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되는 그 감각이 좋았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정해두지 않아도 저는 이미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저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의 삶은 제가 느끼는 재미보다, 그 재미가 데려다줄 수 있는 자리로 설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의 성적을 보고 어떤 길을 원했습니다. 그 정도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꼭 제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듣다 보니 저도 어느새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높은 곳에 도달하면, 지금 느끼는 막연한 불안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취가 곧 답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시 학년이 되었을 때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즐겁게 공부하던 시간은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버티며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버텼고, 결국 원하던 결과를 얻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던 순간이 아직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기뻐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보고, 그러고는 조용히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도달하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는데도, 삶의 질문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뭘 해야 하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거지? 이 다음 단계도 또 남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향해 가는 것 아닐까?
저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좁히지 않은 채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열려 있는 곳에서 시간을 가지면 방향이 보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모르겠더라고요.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자유로워지기는커녕, 무엇을 골라야 할지 더 막막해졌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학점을 올리고, 대외활동을 하고, 스펙을 쌓고, 진로를 준비했습니다. 친구들이 인턴 공고를 공유하거나 다음 학기 수업 전략을 이야기할 때, 저는 그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해는 했습니다.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따라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 끝의 공허를 먼저 상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확인한 그날에 느꼈던 조용함을, 또 한 번 맞이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히 다녔습니다. 속으로는 계속 같은 질문 위에서 맴돌았습니다. 저도 친구들처럼 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건지, 저 자신도 잘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방황이 언제 끝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떤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느 날부터인가, 저 자신에게 조용히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삶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설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상하게 자꾸 맴돌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어딘가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꿈, 진로, 성공, 성취. 그중 하나를 제대로 붙잡으면 삶의 불안과 공허가 사라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답을 찾지 못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 멈춰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정답이 애초에 없다면. 삶이 완성된 의미를 미리 쥐여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의미를 먼저 찾아낸 뒤 움직이겠다고 버티는 것은 그 자체로 멈춤일 뿐입니다.
한 정신의학자는 극한의 상황을 겪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에서 생겨난다고.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저는 제가 혼자 붙잡고 있던 생각에 비로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던 것이 저만의 결함이 아니라는 것. 의미를 미리 손에 쥐어야 산다고 믿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잘못된 전제였다는 것.
허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허무가 있다고 해서 오늘의 일까지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문득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감각이 찾아옵니다. 예전에는 그 감각이 저를 멈추게 했습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허무는 찾아왔다가 지나갑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늘의 일은 계속 있습니다.
저는 이제 큰 질문을 미리 답하려 하지 않습니다. 꿈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끝내 다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대신 지금 당장 제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봅니다. 지금 흥미를 느끼는 일에 몰입합니다. 한 번 선택한 일에는 가능한 한 깊이 들어갑니다. 그 일이 영원한 의미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저에게 진실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일이 끝나면 또 다음 일을 찾습니다. 어떻게 보면 끝나지 않는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반복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저는, 무언가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저는 꿈을 선명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이 저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꿈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답을 미리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더 진지해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완전한 답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조금은 덜 불안합니다.